베버의 노동사회학

"막스베버 농업노동자 연구"

"막스 베버 노동사회학의 이론적-방법론적 논의"

김덕영. 1999. "노동의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까지: 막스 베버 노동사회학의 이론적-방법론적 논의의 다양화와 심화를 위하여." 『산업과 노동』제 1 집. 한국사회학회. PP 2 ∼ 7.

이 글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막스베버의 노동사회학에 대한 이론적-방법론적 논의를 담고 있는 김덕영(독일 Goettingen 대학) 사회학박사의 최근 연구논문으로 그중에서 베버의 농업노동자 연구에 관해 서술한 내용입니다.

베버는 자신의 과학적 활동의 초창기부터 노동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890년부터 1892년까지 독일의 사회정책학회는 전 독일 지역을 6개 지역으로 나누어서 농업노동자 실태에 대한 아주 광범위한 앙케트 조사 연구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베버는 여기에서 동 엘베강 지역에 대한 연구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융커 계급에 의해 지배되는 대지주 농업 경제가 널리 퍼져 있고, 폴란드나 러시아에서 싼 임금의 계절 노동자들이 유입되는 경제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베버의 연구는 일반적으로 사회정책학회가 실시한 여섯 개의 경험 조사 연구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연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 엘베강 지역 농업노동자 실태를 연구함에 있어 베버는 당시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입장에 서서 자신의 주된 인식관심을 독일의 봉건적-가부장적 농촌 경제가 근대적인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면서 겪는 근본적인 변화에 두었다. 그런데 베버는 단순히 독일 농업경제의 자본주의화 과정이 야기하는 경제적인 측면과 요소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경제적인 것 이외에도 농업노동자의 정치적, 윤리적-도덕적, 문화적 그리고 심리적 관계와 같은 다차원적인 관계를 분석하고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베버의 농업노동자 연구는 양적 연구 방법과 질적 연구 방법을 결합시킨 연구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참고하고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연구이다. 사회정책학회는 1893년에 베를린에서 열린 회의에서 연구 결과를 보고하고 토론했다. 여기에서 베버는 『농촌 경제제도』라는 제목으로 자기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사회정책학회 출판 시리즈의 53권부터 55권까지가 바로 농업노동자 연구 결과를 싣고 있는데, 이 중에서 55권 전체가 베버의 동 엘베강 지역 연구를 담고 있다. 이 책은 1984년에 "막스베버 전집" 1/3권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1894년 베버는 이를 바탕으로 해서 "동 엘베강 농업노동자 실태의 발전 경향들"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위에서 방금 언급한 "농촌 경제제도"라는 글과 더불어 그의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경험조사 연구를 축약된 형식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동 엘베강 지역 농업노동자 실태에 대한 연구 직후에 베버는 하울 괴레(Paul Goehre)와 공동으로 "개신교 사회 연합회"의 위탁으로 전 독일 지역에 걸친 농업노동자 실태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근본적으로 "사회정책학회"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행한 동 엘베강 연구에 준거하고 있는데, 단지 "개신교 사회 연합회"라는 단체의 종교적-윤리적 성격 때문에 그전 연구보다는 좀더 종교적-윤리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연구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의 결과는 그 이전의 연구결과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없다, 전자는 오히려 후자에 대한 매우 값진 보충이라고 볼 수 있다. "개신교 사회 연합회"는 1894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제5차 회의에서 연구결과를 보고하고 토론했다.

이 두 개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베버가 이미 초창기부터 자본주라는 현상을 단순히 경제적인 것을 넘어서서 매우 다양한 차원과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봉건적 독일 농업 경제의 자본주의 체제에로의 이행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농업노동자의 내적 심리 상태에 끼친 영향에 대한 분석은 오늘날의 연구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경제 현상과 과정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과 관련, 구스타프 쉬몰러(Gustav von Schmoller)는 심리학이야말로 모든 정신과학 그리고 특히 경제학의 열쇠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독일 역사학파의 영향하에서 베버는 다음과 같이 심리적 분석의 과학적 필요성과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심리적 욕구의 변화는 물질적 생활조건의 변화보다 훨씬 더 크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무시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용인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순수한 경제적 고찰-그 중에서도 농업 조직의 문제에 있어서의-은 비현실적일 것이다. 바로 농업 경제 영역에서 그리고 바로 현시점에서 순수한 경제적 관찰방법에 있어서도 사실 지속적인 발전의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농업노동자는 전통적인 현물 임금보다는 근대적인 화폐임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이는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심리적인 이유에서이다. 왜냐하면 화폐임금은 실제로 노동자 집단의 경제적 상황은 더 악화시키는데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현물임금이 아닌 화폐임금을 통해서 지주와의 전통적인 봉건적 지배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심리적"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주관적"인 것을 의미한다. "현시점의 변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입장", "노동자의 주관적 성향", "개인적 이해관계", "개인적 소망", "자유에 대한 개인적 갈망". 이 같은 심리학적 요소들은 양적인 방법이 아니라 질적인 방법에 의해서 관찰, 기술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베버가 농업노동자 실태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서 주관적인 것을 개개인의 주체적 행위와 그 의미차원과 동일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농촌경제의 자본주의적 변화와 이행과정에 연관된 개인이나 집단은 오히려 위와 같은 심리적 요소들을 의식하지 못했다. 이는 사실 집단심리학적 현상과 과정에 다름 아니다. 주체적으로 행위하는 개개인의 의미차원이 베버 사고 체계의 바탕을 이루게 되는 것은 1900년 이후의 일이다. 여기에서 베버는 자신이 지적으로 성장한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을 비판하고, 개개인의 유의미한 경제행위에 터 하는 이론 경제학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과 개신교 윤리에 대한 문화사적 연구에서 근대적 자아에 바탕하면서 유의미한 사회적 행위를 할 결단 능력과 의지 능력을 소유한 인간집단을 확인하게 된다.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본질과 그 구조적 특성은 집단 심리학적 방법이 아니라, 서민계급의 합리적 행위와 생활유형에 결부된 주관적 의미의 차원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서 그 원인과 결과를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요소와 개신교 윤리라는 종교적 요소에 의하여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적절하게 밝혀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베버의 농업노동에 대한 연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연구 사이에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개념적-이론적 그리고 방법론적인 불연속성이 존재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베버는 경제 현상이나 과정의 심리학적 측면과 요소를 고려하고 분석한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과학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심리학을 모든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기본과학"으로 간주하는 역사학파 경제학자들의 심리학주의적 경향을 비판했다. 경제학이라는 개별 과학적 사회과학은 바로 자체에 고유한 논리, 원칙, 법칙 그리고 방법의 바탕 위에 구축되어야만 한다. 심리학도 경제학과 같이 여러 다양한 특수한 경험적 개별과학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어떤 특정한 개별과학을 그 어떠한 다른 특정한 개별과학 위에 구축하려는 시도는 현대가 다양한 개별과학이 존립하는 시대라는 문화사적-정신사적 사실을 오해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은 심리학 이외에도 경제학을 역사학 위에 구축하려고 하며, 과학과 정치 또는 이론과 실천을 직접적으로 결합시키려고 하는 시도를 함으로써 이중삼중의 문제점을 안게 되었다. 다양한 개별과학들이 존재하는 시대에 독일의 역사학파 경제학자들은 보편과학을 추구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베버는 그가 지적-과학적으로 성장한 역사학파 경제학으로부터 점점 더 거리를 두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지성사적 측면이외에도 실천적-정치적인 관점에서 베버는 동 엘베강 유역의 농업노동자 실태에 대한 체계적인 경험연구를 통해서 독일 사회를 주도해 나갈 집단과 세력이 이제는 더 이상 권위적이고 농촌에 경제적-정치적 기반을 두는 전래의 봉건적 귀족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동 엘베강 유역의 대지주들이 일반적으로 독일 노동자들보다는 낮은 생활주순과 문화수준의 슬라브계 계절 노동자들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이 연구 결과 밝혀지게 되었다. 독일 노동자들이 점차로 슬라브계 노동자들에 의하여 밀려나는, 이른바 독일 농업경제가 슬라브화 되어 가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전래적 대지주들의 사고나 행위는 단순히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이고 정당화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국민국가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보다 더 비독일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독일 농업 경제의 슬라브화는 단지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독일의 문화수준, 농촌인구의 영양상태 그리고 욕구가 그 보다는 더 낮은 슬라브계의 문화수준으로 전락하게 됨을 의미한다. 전래적 대지주는 이제 독일이라는 국가를 위하여 하등의 가치가 없는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융커 계급의 위상과 기능의 근본적인 변화는 물론 이 사회집단의 오류나 실수라기보다는 더 이상 거역할 수 없는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변화에 그 역사적 원인을 갖고 있다. 동 프로이센 지역에 대한 일차적인 경제 정책적 대안이자 과제는 당연히 슬라브계 노동자 유입의 절대적인 금지에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농업 경제를 봉건적-귄위적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민계급적인 자유 자본주의로 전환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있다.

베버는 이제 산업자본주의와 도시에 기반을 두는 합리적이고 근대적인 시민계급이야말로 독일 사회를 주도해 나가는 집단과 세력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가 보기에는 근대적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하는 시민계급적 세계관, 행위유형 그리고 생활양식을 발전시키는 대안을 통해서만 독일이 자본주의적 산업사회를 이룰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영국, 프랑스나 미국과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자본주의", "직업으로서의 과학" 그리고"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인 근대적 시민계급의 직업윤리를 전형적으로 구현한 인간집단은 다름 아닌 그가 "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문화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한, 개신교의 윤리를 바탕으로 하여 금욕적이고 합리적으로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근대 초기의 경제 시민계급-자본가, 기업가 그리고 은행가와 같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의 시민계급은 아직도 이러한 합리적인 근대적 행위유형과 생활문화를 창출해 내지 못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베버는 기회 있을 때마다 독일 시민계급의 정치적, 문화적 성숙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베버는 무엇보다도 근대 초기의 경제 시민계급을 독일 시민계급이 추구해야 할 인격, 행위 및 생활유형의 모델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