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슨의 직업이론" 
 

 
 
전문직 연구의 대표적 연구자인 프라이드슨 교수가 직업(전문직) 사회학의 재탄생을 위한 이론적 관점을 제시한 책 [Professionalism Reborn] 중에서 자신의 직업이론을 밝혀놓은 글이다. 휴즈(Hughes) 이후 직업연구에 관한 방대한 경험 조사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직업과 전문직에 대한 개념 정립과 이론화 노력이 부실했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계층론, 조직사회학과 분리된 직업 이론의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Freidson, E., 1994. "Occupational Autonomy and Labor Market Shelters", in Professionalism Rebor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75-91

 

직업 개념은 사회학이론에서 이상하게도 경시되어 왔다. 직업 종사자들에 대한 경험적 연구들에서 연구의 관심은 경력이나 노동 기회, 고객과 동료, 고용주와의 상호작용과 같은 주제에 몰두했을 뿐 직업에 대한 개념은 당연시 해 왔다. 그리고 불평등과 지위 달성에 관한 거시 사회학적인 저작들에서는 사회구조에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직업이 담당했을 뿐, 전형적으로 그들의 관심과 일치하거나 이론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않은 정부의 분류를 사용하는 것으로 일괄 처리되곤 했다. 직업은 사회의 기초가 되는 생산 활동을 표현하는 것임으로 너무나 당연히 사회학에서 핵심적인 연구 분야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직업은 휴즈(Hughes, E.)의 전통적인 연구에서처럼 일상생활의 경험과 활동의 미시 사회학적 세계와 많은 계급, 계층, 사회이동 연구들에서처럼 사회구조의 거시 사회학적 세계가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분야다. 직업의 이러한 기능은 그러나, 직업의 이론적 지위가 명료하게 수립되고 분석을 위한 체계적인 전략이 수립되지 않는 한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장에서 나는 직업의 이론적 지위를 명료화하고자 한다. 먼저 나는 직업 개념과 가장 근접된 두 가지 이론, 곧 조직이론과 계층이론이 직업들이 보여주는 특징들을 빈약하게 설명한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직업 이론은 분리되어 발전해야 하며, 다른 이론 틀에 의해 유도될 수 없다. 이와 함께 자율성이 직업 내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설명하고 개인의 미시 사회학적 경험, 활동과 정치경제학의 거시 사회학적 실재, 특히 노동시장 분절간의 연계성의 근거를 밝히고자 한다.

직업과 조직, 계층 이론

원칙적으로 조직론과 계급/계층론이 직업들이 어떻게 생기고 유지되는가 뿐만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환경 속에서 노동 분업의 부분으로 직업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직업 이론은 불필요하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그리고 참으로 모든 발전된 산업사회에서 많은 직업들은 복합 조직에서 단순한 공식적 작업 역할 혹은 지위에 불과하며 개인적, 국가적 자본에 의해 수행되는 관리적 권력에 의해 통제되어 있다는 점도 명백하다.

그러나 모든 노동 역할이 항상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많은 직업들은 그것이 발견되는 조직에 의해서만 정확하게 분석되고 설명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직업들은 영리 회사 밖의 외부노동시장에 존재하며 번창한다. 또 다른 직업들은 심지어 회사 내에서 수행될 지라도 "예외적"인데(Piore, 1975), 왜냐하면 이 직업들은 스틴치콤(Stinchcombe, 1959, p 186)이 주목했듯이 "노동시장에서 지위의 지속성"을 유지한다. 이 직업의 일원들은 회사에서 지위를 스스로 취하고 전문적으로 노동의 공급을 통제하며 그들의 서비스에 대한 요구를 스스로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기까지 한다. 이런 직업들은 회사와 독립적으로 조직된 집단이며 회사나 공식 조직의 단순한 대상물이기 보다 다른 어떤 것으로 개념화해야만 한다.

이유는 다르지만, 동일한 결론을 계층/계급론에 대해서도 내릴 수 있다. 회사의 경우에 직업은 계층론과 계급론의 본질적인 경험적 성분이 된다. 그러나 분화된 생산활동의 조직형태로써 존재하는 일반적인 직업은 계급/계층론의 분석 초점에서 최악의 경우 무시되거나 최상의 경우에도 희미하고 모호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계층/계급론은 직무에 따른 작업이 실제로 어떻게 수행되는가, 생산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해서 설명하는데 한계를 갖는다. 생산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직업을 살펴보아야지, 단순히 넓은 의미의 계급이나 계층 분석의 내적 합리성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론가들에 의해서 계급으로 정의된 것에서의 집합 의식과 조직 행위의 부재를 설명하는데 있어 계급이론이 지속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Mann, 1973). 실제로 오늘날 집합 의식과 조직 행위는 회사의 생산조직과는 독립적인 집단에서, 동일한 계층/계급 내의 다른 직업과는 독립적으로 조직화된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발견되고 있다(Krause, 1971).

게다가 오늘날 대부분의 직업들은 자체적인 의식과 행동, 조직화된 집단을 갖는 직업들의 노동인구에서의 잠재성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잠재성은 다른 주제를 다루고 설명하기 위한 이론들로부터 추론하려는 시도보다는 그 자체로서 직업에 기초한 분석의 발전에 의해서 만족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직업 개념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경험적인 분석의 초점이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론의 정교화를 이룰 것인가에 있다.

초점의 문제

현재 직업은 이론적으로 두 가지 이론에 의해 개념화되는 경향이 있다. 첫 번째는 업무들 또는 직무(직능)로써 직업들을 개념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방식으로 우리는 유리를 접합하는 사람과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 유리에 바람을 불어넣는 사람, 기타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구별한다. 피상적으로 이것은 이치에 맞다. 그러나 좀더 세밀히 관찰하면 이러한 업무 기술로는 직업을 유용하게 파악할 수 없다. 어떤 기계는 유리에 바람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접합하는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데서 알 수 있듯 기술적 구분과 직업적 구분은 다를 수 있고, 만약 업무나 직무로 직업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직업과 기술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점을 안게 된다.
 
두 번째 직업의 개념화는 계급 또는 계층체계에서 직업의 서로 다른 지위를 강조함으로써 기술적 개념에서의 어려움을 회피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계층, 사회이동 연구나 노동 통계학에서 직업은 위신, 수입, 권력 또는 생산에 대한 통제의 위계에 따라 위치지움으로써 구별된다. 맑시즘에 기초한 계급 분석에서도 업무나 직무의 차이를 무시하고 생산의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서 모든 직업들을 묶는다(Wright, 1978, 1360).

그러나 자영업자인 의사와 변호사를 예로 든다면 이들은 동일한 지위에 속하지만 각각은 완전히 다른 작업을 수행하며 확연히 구별되는 사회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생산의 폭넓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조직화되지 않으며, 동시에 숙련 정도나 사회적 책임, 위신, 그 밖의 측면에서 하나의 직무로 볼 수도 없다. 참으로 터너와 허즈(Turner and Hodge, 1970, p. 34)가 언급한 "거시-계층 가정(macro-stratification assumption)"은 직업을 구분 짓는 것과 실제로 수행되는 상세한 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없애버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직업을 개념화 할 것인가란 점이 제기된다. 나는 충실한 초점은 직업이 사회집단으로 조직화되는 환경을 분석하는 것과 그들의 조직화의 근원과 양식, 그리고 정도에 의해서 직업을 분류하는 것, 동시에 그러한 조직화의 결과가 어떻게 분업화되는가를 분석하는 것에 놓여져 있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접근은 이미 뒤르켐의 직업집단에 대한 고전적 논의, 『분업론』(1947, pp 1-31)과 『직업윤리와 시민도덕』(1957, pp 4-41)에 나타나 있다.

물론 만약 우리가 직업을 배타적으로 조직화된 집단만을 한정한다면 충실한 초점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한적 틀은 오늘날 대부분의 직업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많은 직업들은 노동시장과 노동의 소비자에 의해 부과되는 것을  넘어서는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다(Morse, 1969; Olsen and Katsuranis, 1978). 어떤 직업들은 개별 직업으로 조직화되며 또 다른 직업들은 상호 연결된 조직 특성을 보여준다. 또 다른 직업들, 종종 전문직이나 기능공들의 직업들은 연대감이나 헌신뿐만 아니라 일원들이 공통적인 직업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배타적으로 조직화된 집단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명백히, 노동에 관한 일상적인 토론은 직업 조직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히도 너무나 모호하고 부정확해 보인다.

분명, 노동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인 토론에서 우리는 언제나 직업조직에 관심을 갖게되는데 왜냐하면 조직은 노동이나 조합, 전문직, 그리고 기능공 등과 같이 일상적인 용어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은 불행히도 조직 이외에 무수히 많은 의미들과 연관되어 있어 매우 모호하며 애매하다. 정작 필요한 것은 "구전하는 개념(일상용어)"을 사용하는 가치 없는 시도보다는 직업조직의 논리적인 개념이다. 직업조직의 차이에 관한 논리적인 개념은 직업 조직의 형태와 직업조직이 노동과 노동자에게 어떤 결과를 낳는가 라는 양자에 의해 영향받는 직업조직과 자율성의 가능성을 내재한 변인들의 논리 정연한 이론적 개념을 창조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핵심적인 주제를 말한다면 어떻게 직업이 그 자체로서 자율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가, 개인과 경제를 직업이 어떻게 연계하는가, 표면상의 계급에 소속된 다른 일원들로부터 어떻게 한 직업을 분리할 것인가,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라고 할 수 있다.

직업집단의 개념은, 특별히 직업 공동체의 개념은 비교적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직업들의 일원들에 대한 전통적인 연구들로부터 수집된 자료를 조직화하는데 매우 유용하다(Salaman, 1974). 이것은 개인의 정체성, 작업장 밖에서의 사회적 관계와 같은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는데도 유용하다. 그러나 이러한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미시적 영역을 넘어서는) 정치경제학과 연결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그 자체로서 설명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주어진 것으로서 직업조직을 다룰 뿐이다.

미시와 거시의 연계에서 하나의 충실한 방식은 미국과 영국의 전문직의 성장을 연구한 라슨(Larson, 1977)에 의해서 탐색되었다. 노동시장 분석을 통한 그녀의 접근은 업종에 따른 도식과 표준화를 포함한 작업활동의 종류와 훈련 프로그램의 형성, 충원방식과 지배계급으로부터의 지원 관계의 성립을 포함하여 직업을 분석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은 크렉컬(Kreckel, 1980)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그는 노동시장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주 간에 노동력의 흥정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다섯 가지 사회적 메카니즘을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접근은 이미 계급이론에 의해서 입증된 것이며 직업 개념을 내재한 차별적인 분석으로부터 관심을 따른 곳으로 돌리게 만든다. 나는 여기에서 프리드만(Freedman, 1976)의 개념인 "노동시장의 안식처(shelters)"라는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본질적으로 나는 거시 구조와 미시 구조를 연결할 수 있는 영역은 이중노동시장이론에서 개념화된 회사들의 고용과 인사정책 바깥에 놓여 있는 외부 노동시장임을 제안한다. 동시에 외부노동시장의 계층 혹은 계급 분화로부터 분리된 메카니즘이 노동시장의 안식처라고 할 수 있다. 계층 혹은 계급 분화가 아닌 직업 분화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직업 조직의 상호작용은 물론 직업과 직업 종사자들의 경험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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