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즈(Mills, C. W), 노동의 의미

Mills, Meaning of Work

밀즈(Mills, C. W). "노동". [화이트칼라]. 강희경 옮김. 1980. The American Middle Classes, 1951. Oxford University Press.

제 8 장 노동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내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노동은 또 인간의 원죄를 씻는 일이며 자아의 완전한 표현으로서, 인간의 본분이나 혹은 인간에 보편적 본성의 발전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사랑과 증오는 인간의 생래적인 것은 아니며 특정 노동에 고유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체에 본질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의 의미에 관해 완벽하게 써놓은 역사가는 아직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근대의 노동자에게까지 면면이 이어져 내려왔고 그들의 노동과 여가생활을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여러 가지 노동철학적 결과들을 추적할 수 있다.

1. 노동의 의미

기계적인 노동을 모두 노예에게 맡겼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노동이란 정신을 야비하게 만들고 인간으로서 덕을 행할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 보았다. 노동은 물질적 필요악이며 영원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엘리트인 시민은 이를 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히부리인들 역시 노동을 고통스러운 일로 보았으며 인간은 원죄 때문에 이 같은 힘든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동이 원죄를 보상하는 것인 이상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인데도, 이를테면 구약성서의 전도서 같은 곳에서도 인간의 노동은 영혼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후 유대 율법주의에서는 노동에 다소의 품위를 부여, 영혼을 욕되게 하는 것이기보다는 가치 있는 행위로 보았지만 다가올 이상적인 왕국은 축복 받은 안일의 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시 그리스도교에서는 노동이 원죄에 대한 벌로 여겨지긴 했지만 동시에 노동은 태만이라고 하는 악덕을 막고 인류애의 궁극적인 목적인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노동이 이 인간 세상에 관한 한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루터에 의해 처음으로 노동은 생활의 기초며 열쇠라고 하는 근대적인 해석을 받게 되었다. 루터는 바울이 한 말을 되풀이하면서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해야한다고 부언했다. 태만은 자연의 순리에 반하는 사악한 도피다. 노동에 의해 자기생활을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에게 봉사하는 길이다. 이와 같은 사고에 의해 종교적인 신앙심과 현세적인 노동행위와의 사이에 존재했던 커다란 단층이 사라졌다. 즉 직업은 천직이 되고 노동은 구원에 이르는 종교적인 도정으로서의 가치를 부여받았던 것이다.

인간의 운명을 미리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칼빈의 예정설에서도 결코 태만한 생활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근대적인 의미의 노동을 인간의 의무로 했다. 인간이란 이 세상에서 노동을 하도록 선택된 사람 중의 하나이기라도 하듯 합리적이고도 규칙 바르게, 그리고 계속적으로 열심히 노동을 해야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노동개념이 르네상스시대를 통하여 발전되었다. 정신문명이 융성하던 이 시기의 노동을, 인간이 인간으로서 발전하는 것을 막는 장애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발전을 자극하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은 자기자신의 노동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가 있으며 노동을 함으로써 창조자가 되었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가 문제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창조적인 노동을 즐겼다. 브루소는 역경을 이겨내는 수단이며 정복을 위한 도구로서 노동을 찬미하였다.

19세기를 통하여서는, 고전 경제학자들이 노동에 부여했던 공리주의적 의미를 버리고 르네상스기의 풍요한 인본주의에로 다시 돌아가려는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톨스토이, 카알라일, 러스킨, 월리엄 모리스 등과 같은 사람들은 과거에로 복귀하려고 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은 전진하려고 하는 차이는 있었지만 그 어느 쪽도 인간을 도구의 사용자로 보려는 르네상스기의 견해에 입각하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이들 19세기 사상가들에 있어서 중심문제는, 인간의 노동의 본질적 의미를 알아내려는 철학적 고찰과 분업 및 생산물의 분배라고 하는 기술적인 과제였다.

마르크스는 인류발전에 있어서 노동의 의의와 자본주의 사회가 인류발전을 왜곡하고 있는 사실을 광범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에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진수는 그의 노동에 있다고 보았다. 즉 개인은 생산물과 생산수단을 포함하는 의미로서의 생산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본질은 생활을 좌우하는 물질적 조달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완전한 인간성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 독일의 고전적 이상주의로서의 인간 이상을 받아들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동물적으로 비인간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카알라일은 외재적 혹은 내재적으로 노동을 보는 두 가지 견해를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1) 근대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고전파 경제학의 사고방식에 따른 경우) 교리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여러 교파들은 노동행위를 종교적인 구속에 대한 외적 보상으로, 다시 말하면 노동으로부터 얻은 기쁨은 그 노동행위와 경험자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외재적인 보수라고 본다.

(2) 노동을 본질적으로 9내재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보는 르네상스적 노동관은 노동과정 그 자체-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에 대한 기술적인 장인 기질 가운데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는 노동의 가치를 노동의 결과나 노동이외의 다른 영역에서가 아니라 노동 그 자체 내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노동관 중 어느 것도 근대인의 노동생활에는 별로 커다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노동이란 일반적으로 불쾌한 것이다. 공장의 무산 노동자나 사무노동자에게 칼빈주의적 강제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험회사의 사무원이나 백화점 여성판매원의 노동에도 르네상스적인 풍요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미국인 자신들은 물론 미국을 보는 외국인들도 프로테스탄티즘과 결부된 복음으로서의 노동관이 미국 전통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여 왔다. 지금 이 복음은 위기에 직면하여 쇠약해짐으로써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같은 복음의 의미와 그 쇠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20세기의 미국정신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미국에는 지난날의 중간계층인 기업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노동윤리는 보이지 않는데, 이와 같은 사실은 구중간계급 사회구조의 몰락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심리현상이다. 신중간계층은 많은 사람들이 구중간계급에서 기원하고 있음에도 불구라고 지난날의 노동윤리와는 별로 인연이 없으며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정신적으로는 애당초 비부르조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역사적으로 옛 노동관 다음으로 나타난 두 번째 유형, 노동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을 나타내는 직업윤리인-장인기질-도 신중간계층에게는 전통에서든, 노동의 성격에서든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톨스토이나 러스킨으로부터 베르그송이나 소렐에 의한, 노동자의 만족도에 관한 진지한 고찰 배후에는 막연하나마 장인기질적 유형이 남아있다.

2. 장인기질의 이상

노동의 만족에 관해 완전히 이상화된 모델로서의 장인기질은 6 가지 주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월리엄 모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훌륭한 노동에 대한 기대란 노동자체의 기쁨 및 생산물에 대한 기대인 것이다. 따라서 장인의 온 신경은 생산물의 품질에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에 집중된다. 다른 동기나 결과-돈이나 명성, 혹은 구원 등-는 부차적인 것이다.

(2) 장인은 생산물의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여 비록 자기가 전과정을 맡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전체에서 자기가 맡은 부분을 알고 따라서 전체가운데서 자기의 노력이 이바지하는 의의를 이해한다.

(3) 장인은 노동을 스스로 계획하고 작업의 순서와 방법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가 있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계획과 행동과는 일치하고 있으며 그는 일의 과정에서 자기자신 및 노동의 주인인 셈이라고 한다.

(4) 따라서 장인의 노동은 그의 기술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그 자신을 인간으로서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이 된다.

(5) 장인의 생활양식에서는 노동과 휴식, 노동과 교양 사이에 아무런 구별도 없다. 휴식이 그 행위자를 즐겁게 하는 일 이외에 다른 목적이 없고 그 자체를 위한 행동으로 생각된다면 노동은 경제적 가치나 혹은 다른 궁극적인 결과를 낳기 위해 행해지는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모형을 염두에 두고 근대인의 노동생활을 바라보면 실제로 근대노동경험과 직접 관련이 있는 측면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장인기질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다만 우리는 이와 같은 유형을 오늘날의 노동야식과 비교 고찰함으로써 근대인, 특히 화이트칼라의 노동조건과 의미를 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분명한 이상으로서 이 모형을 이용해 본 것이다.

3. 근대적 노동의 조건

지금까지 실제생활에서는 장인기질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취미 도락적인 것" 즉 노동이라기보다는 여가생활의 일부로 보아왔으며 노동이 있다면 그것은 수공업적인 것이거나 자유로이 있고 싶어하는 소수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하는 정도의 노동이다. 윤리적인 것으로서의 장인기질은 어느 정도 특권을 가진 소수의 전문가나 지식인 그룹에 한정되어 있다.

노동과정이나 생산물로부터 노동자가 소외되어 버린 사실은 근대자본주의와 근대적 분업의 법적 구조에 기인한다. 이제 노동자는 그의 생산활동에서 사용하는 도구도 생산물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노동계약을 통해 가장 잘 표현된다고 하는 추상론을 가지고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인력시장에 관계가 있는 모든 직종들에서 한 인간의 인격이나 개인적 특질은 생산을 위한 수단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그 본질적인 부분이었던 인격이나 성질까지도 도구화, 외재화 시킨다. 일부 화이트칼라들에게 있어서는 인력시장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자기소외와 사회적 소외 현상이 극단적인 상태에까지 이른다. 소기업가들에게 동정적이었던 소로우는 19세기 중반경 "분업은 단지 노동을 분할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갈라놓고 인간을 한낱 직공으로 만들어 버리며 또 다수를 희생시켜 소수인을 부유케 한다"는 이유를 들어 분업에 반대했다. 노동과 교양의 결합을 주된 이상의 하나로 삼았던 소로우의 농업세계에서 가능했던 잠재적 균형은 분업에 의해 파괴되어 버렸다고 메슈슨은 썼다.

베르그송이 말했듯이 모든 현대인의 생활에서 "우리는 시간의 대부분을 자기 아닌 외부를 위해 바치고 있다. 진정한 자기에 관해서는 모르고 단지 자기 자신의 환영 속에서 생각하기보다는 말을, 자신이 능동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수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자유로이 행동을 한다는 것이야말로 바로 자의 소유권을 되찾는 길'이라고 말했다. 자기의 노동활동을 통제할 자유가 없다면 결국 습관적으로 타인의 명령에 따르게 되며 그래서 자유롭게 행동하고자 바랄 경우에는 노동 이외의 생활영역에서 그 같은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 노동으로부터 무언가 배우고 잇지 않으며 노동을 통해 자아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을 경우 결국 다른 생활에 있어서도 자아의 발전에 대한 흥미와 욕구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들의 노동과 유희, 노동과 교양은 분리가 되어 있고 그들은 이 같은 분리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생계자료를 얻기 위한 노동으로는 본질적인 생활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노동이외의 것에서 참된 생활을 이루어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노동 자체는 시간의 낭비이며 그 밖의 생활 창조를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