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근 교수의 "한국의 노동자(한국노동계급의 형성)"  
 

 
 
구해근교수의 한국의 노동자  [한국의 노동자(Korean Workers)]는 하와이 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구해근 교수가 10여년간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완성한 저서로 미국 코넬대학교 출판부에서 2001년도에 발간되었으며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신광영 옮김, 창작과 비평사)이라는 제목으로 2002년도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이 저서는 지난 40년간의 산업화과정에서 한국의 노동계급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에 관해 사회학적인 시각에서 폭넓게 조망하고 있다. 브루스 커밍스는 이 저서를 "E. P. 톰슨의 고전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나란히 두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최장집 고대 교수는 "계급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기술한 한국 노동운동에 관한 최고의 연구서"로 극찬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번역서 중에서 머리말의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해 본다.

Koo, Hagen. 2001. 「Korean Workers: The Culture and Politics of Class Formation」. Cornell University Press
구해근. 2002.「한국노동계급의 형성」. 신광영 옮김. 창작과 비평사. pp.31-38.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한국의 발전을 사회학적인 시각에서 폭넓게 조망해보기 위해서, 특히 이 발전과정의 사회, 문화적 측면을 분석해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 발전과정에 나타난 계급간의 역학관계와 계급요인들이 한국의 산업화과정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 데 특히 관심이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몇개의 학술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내가 다루는 문제들이 한 권의 책에 담기에는 너무나 크고 광범위한 현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나는 한국의 산업노동자들이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얼마나 빈약했는가를 깨달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불의가 엄청났으며 억압적인 권력에 대항한 그들의 저항정신이 실로 대단했다는 사실이었다. 좀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그들의 투쟁사례는 몇권의 책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생활체험과 투쟁의 역사는 1960-90년대 한국 산업화과정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계급에 관해서 책을 쓰는 것이 무척 가치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지만, 나는 적잖이 망설였다. 한국 노동자의 경험에 관한 글을 쓰는 데 과연 내가 적임자인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에는 노동운동에 참여해온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한국 노동운동에 대해 자세한 정보와 깊은 열정을 가지고 글을 썼다. 한국 노동운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노동운동에 많은 학생, 지식인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들 지식인 노동운동가들은 1980-90년대 노동운동에 관해 많은 서술과 분석자료를 생산해냈다. 또한 많은 노동자들이 수기, 시, 노조활동에 관한 기록들, 파업전단 등의 형태로 그들 자신의 공장생활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나보다는 이들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내게는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다른 사회와 비교적인 시각에서 한국의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한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영어권 독자들에게 좀더 잘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초기 연구단계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한국의 노동운동에 관해 이미 충분한 양의 문헌이, 물론 거의 대부분이 한국어로 씌어진 것이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에 관한 저작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따라서 노동계급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예컨대 한국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그들의 공장생활을 체험하고 해석했는가, 어떻게 그들은 노동자간에 존재하는 공통의 이해를 깨닫게 되었는가, 어떻게 그들은 노동자들의 연대의 중요성과 자주적 노조결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권위주의 국가에 대항해서 높은 수준의 정치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노동자투쟁을 단지 노조운동으로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형성으로, 즉 노동자계급이 그들 고유의 계급정체성과 계급의식을 형성해가는 과정으로 아해하고자 한다면 답해야 하는 핵심적인 질문들이다.

 나는 이 책에서 수출주도형 산업화정책을 구사한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진행된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과정을 기술하고 또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과정을 비교연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한국의 노동자투쟁과 계급 형성과정은 비교연구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사례이며, 기존의 유럽중심 계급 형성이론들을 넘어설 수 있는 많은 착상을 제공한다. 이 책은 그런 이론적 연구를 위한 초보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노동계급의 투쟁을 기술하면서 나는 한국의 문화적, 정치적 요인들이 산업화과정에서 제1세대 산업노동자들의 경험과 투쟁형태 형성에 어떻게 이바지했는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계급형성에 관한 최근 이론들이 제시하듯이, 사회계급은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생활체험을 기초로 형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생활체험은 단지 생산관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 내부와 외부에서 영향을 미치는 문화, 정치적 권력에 의해서 형성된다. 한국사회의 경우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경험은 유교문화적 전통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그리고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에 의해서 형성되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정치권력은 산업노동자들이 계급정체성과 계급의식을 고양하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문화, 정치권력이 자본과 영합하여 노동자들을 억압해왔기 때문에 그들의 심한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국 노동계급의 발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문화, 정치권력이 노동자들의 정체성과 의식을 한편으로는 억압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촉진하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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