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이론 소개
 

1.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미친 실용주의 철학의 영향

2. 사회학의 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접근을 통합하려는 교환이론의 노력

3.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에 있어서 합리성

4. 기능주의와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견해 비교

5. 파슨스와 머튼의 기능주의 이론 비교

6. 블루머와 고프만 이론의 차이점과 유사점

7. 고프만과 가핑켈의 이론의 유사점과 차이점
 
 

1.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미친 실용주의 철학의 영향
 

I 서론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미국 역사와 깊은 연관을 가졌으며 유럽과는 매우 다른 지적 전통의 영향아래에서 성장하였다. 이 지적인 전통은 이론적인 연구를 주도했던 유럽의 사회학이 2차대전 이후 파슨스에 의해 미국에 소개되기 전부터 사회조사 연구의 중요한 방법론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기능주의가 미국사회학에 대한 영향력이 상실되어가는 시점에서 다시 부활했다. 결국 실용주의 철학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을 통해  미국 사회학의 지적 전통의 한 부분으로 성장하였다.

실용주의는 미국의 청교도 정신과 개척정신,그리고 개인주의를 토대로 한 하나의 철학으로서 성립되었고 이것은 이후 사회학이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상호작용론의 토대를 제공해주었다.

만약 실용주의가 없었다면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성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용주의는 상호작용론에 영향을 미친 다른 어떤 지적인 전통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점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출발을 미드로 부터 보고 있는데서 명백히 드러난다. 미드는 실용주의 철학자였으며 시카고 대학에서 철학과 교수로 있었다.

이 글은 미드이전의 실용주의 철학자들이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실용주의 철학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논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상호작용론에 미쳤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II 실용주의 철학의 특징

실용주의 철학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로 구분해서 논의할 수 있다. 먼저 실용주의 철학은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개인주의는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개인주의를 의미하는 합리주의적인 개인주의가 아니라 비경제적인 영역을 포함하는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인 유형의 개인주의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청교도적인 전통과 복음주의적인 개신교로 부터 유래된 것이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내적인 욕구를 철저하게 고찰했으며 ,객관적인 환경이 아니라 영혼의 구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자기성찰적인 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식적인 규율이나 제도적인 위계 질서의 제약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로 간주하게 했다. 이러한 도덕적 개인주의는 실용주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행동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로서의 인간관과 자아의 개념에 대한 관심으로 실용주의 학자들을 이끌었다.

두번째로 실용주의 철학은 이론보다는 실제를,관념보다는 경험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실용주의철학이 '실용'주의로 불리우게된 직접적인 이유이다. 실용주의철학에 있어서 진리의 기준은 '유용성'이다. 이것은 결과로서 경험되는 것이 옳은가의 여부에 따라 진리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번째로 형식보다는 과정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실용주의의 특징은 진화론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다윈주의는 구조가 경험되어지는 과정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미리 결정된 생명구조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듯이 실용주의도 "과정이 형태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실용주의 철학의 이러한 특징은 미드를 통해 상징적 상호작용론으로 전달되었다. 미드는 개인주의 철학으로서의 실용주의를 사회적 상호작용으로서의 사회학이론으로 바꾸어 놓는데 일조했다. 그를 통해 계승된 실용주의 전통은 "사회가 아닌 개인, 관념이 아닌 경험, 형식이 아닌 과정"이라는 시각이다.

III 첫번째 영향-"개인주의 전통-자아의 발견"

만약 상징적 상호작용론이 아니었다면 사회이론에서 '개인'에 대한 발견은 아마도 한참동안 늦쳐졌을 것이다. 이러한 발견이 가능했던 저변에는 실용주의 철학의 전통이 숨어있다. 현대적 형태로서의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대표자이자 미드의 계승자로서 우리는 블루머를 기억하고 있다. 블루머는 세가지 가설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였는데 그것은 첫째, 인간은 사물이 그들에게 가지는 의미에 기초해서 행동한다는 점 둘째, 그 의미는 인간사회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것 셋째, 그 의미는 해석의 과정에서 변경되고 조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의 배후에는 인간이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러한 자아이론은 미드에 의해서 종합적으로 고찰되었지만 이 종합이 가능했던 것은 실용주의 철학자들의 노력때문이었다.

우리는 행동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실용주의자들의 규정을 언급할 수 있다. 제임스는 이런 생각을 가진 첫번째 사람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바라본 스펜서와 스펜서 주의자들을 비판했다고 볼 수 있다.

선험적인 전제의 차원에서 보자면 철학으로서의 실용주의는 규범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접근을 선택한다. 행위자는 가치를 추구한다. 그는 자신의 상황에 "목표"를 부여하기를 원한다. 그는 자신이 경험하는 과정속에서 가치와 목표를 추구한다. 그는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만, 이러한 적응과정속에는 나름대로 세계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듀이는 "주관성은 주도적이며, 창조적이며, 다채롭게 풍부한 자원이며, 그리고 믿음과 행위 선택에서 책임감을 부여해 준다"고 보았다.  듀이는 사회질서를 개인에 대한 규제로 본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파악은 인간의 어떤 능력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이 능력은 곧 '자아'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제임스는 아마도 자아에 대한 명백한 개념을 발전시킨 최초의 사회과학자일 것이다. 제임스는 인간이 자신을 대상으로 볼 수 있고,자신에 대한 자아 감정과 태도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였다. 제임스의 '사회적 자아'란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의 연관성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자아감정을 내포한다고 보았다.

자아의 발견은 사회학이론에서 개인의 발견을 가능하게 했으며 '행위와 구조'의 문제에 있어서 구조적인. 거시적인 측면을 강조했던 사회학 전반의 분위기를 역전시키는데 기여했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실용주의의 지적인 영향아래에 미시적인 사회학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IV 두번째 영향-"관념을 대신한 경험-새로운 방법론의 제시"
 
실용주의는 경험이 진보의 원천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연역적인 논리를 앞세운 사회과학방법론에 새로운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이론 중심주의가 지배적이었던 사회과학의 지적인 분위기에 파문을 던지 블루머의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방법론적 입장'이라는 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실용주의의 경험주의적인 과학관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용주의의 입장에서 진리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개인들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하고 순응하도록 인간을 도울 수 있는 능력만이 진리일 뿐이다. 진리란 결과적으로 "실제적인 결론"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속된 것이든 과학적인 것이든 듀이는 사고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도구"라고 보았다. 제임스는 이론이란 단지 "도구"이며 그러므로 객관적이고 지속적인 진리란 찾을 수 없다는 극단적인 실용주의를 펼쳤다.

제프리 알렉산더는 "실용주의는 경험이 진보의 원천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헤겔을 반박하는 한편, 경험이 선한 지식의 원천이라고 주장함므로써 칸트를 반박한다"고 이같은 특징을 요약하였다. 이것은 과학적이고 연역적인 분석방법을 버리고 그 대신 집단의 실제적인 경험과 역사의 미결정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영향을 미쳤으며 이같은 견해는 초기의 시카고 학파에 방법론적인 시각으로서 영향을 주었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제임스의 극단적인 실용주의를 거부하였으나 경험에 대한 강조를 수용하였으며 감성적 내성이라는 독특한 방법론을 게승하였다. 이 방법론은 이론중심적인 연구풍토,이론과 가설을 전제로 한 연구가 아니라 블루머의 표현대로 "경험세계의 본질을 존중하라.그리고 이렇게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할 방법론적 입장을 만들어 보라"는 언명을 구체화한 것이다.

V 세번째 영향-"과정이 형태를 결정한다-상호작용적 접근"

실용주의는 사고의 과정에 기초적인 관심을 가지며 어떻게 그것이 인간 행위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이해하는데 주목했다. 제임스는 개인들의 능력이 나타나는 사회적 과정보다는 개인들 내부의 심리적 기능작용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심리학자였다. 듀이 역시 사고의 과정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는 인간의 사고할 수 있는 능력,즉 마음(Mind)을 환경에 적응하려는 주체적 노력의 결과로 보았으며, 정신이 단순한 환경적 작용의 결과임을 부정함으로써 상호작용론에서 마음이 사회세계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과 그 작용에 관한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개인의 사고 과정에 대한 관심을 집단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 사람은 쿨리였다. 쿨리는 자아가 집단적인 맥락속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나타남을 인식하였다. 사람들은 다른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상상하고,그로부터 자신에 대한 이미지 혹은 자아감정과 태도를 이끌어낸다는 의미에서 영상자아(Looking glass self)라고 불렀다. 그는 어떤 집단에 참여하는 것이 다른 집단에 참여하는 것보다 자아의 발생과 유지에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원초적 집단'(primary group)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견해는 이후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계승되면서 기초적인 가설로서 성립되었다. 이점은 쿨리가 미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쿨리는 다음의 네가지 가설, 사회는 상호작용으로부터 구조화된다는 점, 상호작용은 제스처의 교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 자아는 사회조직의 유형에 의해서 창조되고 유지되고 허용된다는 사실, 사회조직은 집단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심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점 등을 미드에게 전해주었다. 이 가설은 이후 블루머에 의해서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기본적인 가설로서 설정되었다.
 
VI 결론

실용주의 철학에 대한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계승에 대해서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제프리 알렉산더는 블루머를 위시한 현대의 상호작용론자들이 미드나 피어스처럼 개인주의와 집합체간의 통합이론을 추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휠씬 더 개인주의적인 실용주의로 빠졌있음을 지적한다. 반면 블루머는 실용주의 학자들의 상당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집단 생활을 보고 연구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게승한 것이 상징적 상호작용론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상반된 견해 중에서 어떤 것이 옳든 간에 우리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이 실용주의의 게승자라는 사실이며 이러한 이유로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서구의 사회학계에서 유일하게 거의 전적으로 "미국적인" 이론이라는 점이다.
 

2. 사회학의 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접근을 통합하려는 교환이론의 노력

I 서론

사회학이론의 수립에 있어서 교환이론은 큰 호소력을 갖는다. 그것은 교환이론이 다양한 지적 전통을 통합시킬 만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리주의와 경제학, 심리학적 행동주의,변증법적 갈등이론, 그리고 기능주의까지 여러 요소들이 교환이론에 통합되어 있다. 교환이론은 행위자를 보상을 추구하는 동시에 불균형과 잠재적인 갈등이 가득 차 있는 복합적인 교환구조의 조직화된 의사결정자로 파악함으로써 여러 이론적인 시각을 통합하고 있다.

이는 사회학 이론의 오래된 난제 중의 하나인 구조와 행위의 문제,곧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의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대안으로 교환이론이 등장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최근 연결망이론( Network Theory)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글은 호만스의 개인주의적 딜레마를 먼저 설명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블라우와 에머슨의 노력을 다루고자 한다. 블라우와 에머슨은 사회학의 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접근을 통합하려했던 이론가이며 이들은 동시에 현대의 교환이론을 대표하고 있다.

II 호만스의 개인주의적인 딜레마

교환이론적 전망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중의 한사람으로 우리는 호만스를 꼽는다. 호만스는 이론적 설명을 위해 오랜 노력을 바친 끝에 교환원리에 입각한 특정한 사회학적 전략을 주창하게 되었다. 그는 개인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면접적인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여 행위의 기본원리를 구성하였다.

그의 사회적 행동의 기본 원리들은 다음의 다섯가지 기본 명제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공명제(어떤 사람의 특정 행위가 자주 보상되면 될 수록 그 사람이 그 행위를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자극명제(과거에 자극이 보상된 것이라면 그 행위나 다른 비슷한 행동을 하려한다),가치명제(가치가 크면 클수록, 그 행위를 수행하려 한다),박탈-포만명제(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공격-인정 명제(분배정의의 문제) 등이다.

이러한 그의 공식화는 질서의 문제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개인주의적인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받게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질서의 문제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잔여범주로 간주되었다. 집합주의적 입장을 거부한다면, 질서는 결국 끝없는 개인적 협상의 우연한 결과일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만스는 일반이론이 성립되기 어려운 난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수 있다.

에머슨은 다음과 같이 호만스의 행동주의적 공식의 약점을 지적하였다. 첫째, 개인 행위의 집합적인 요소를 제외한다면 사회에 대한 실제적인 개념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만스의 사회구조에 대한 개념은 너무나 초보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행동하는 개인"들을 둘러쌓고 있는 사회적 맥락들을 주어진 것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호만스의 이론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관계를 또는 사회구조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이론적인 불구상황을 해소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해소는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서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III 블라우의 교환구조주의

피터 블라우의 이론적 도식은 교환모델로서 기능이론과 갈등이론을 그리고 상호작용이론의 많은 가정과 개념을 통합하려고 한 것이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블라우의 교환론적 시각은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갈등 및 교환이라는 미시적 과정과 ,거시적 분석수준에 있는 발현적인 속성(emergent property)들간의 간격을 메우고자 하였다.

블라우는 거시-미시간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첫째, 견인, 경쟁, 분화, 통합 및 대립의 기본적인 교환과정들이 사회조직의 모든 수준에서 일어난다고 보았다. 둘째, 조직의 모든 수준에서 이 과정들의 전개를 설명할 수 있는, 일반적인 교환원리 들을 해명하고 추상적인 교환개념들을 통합하려고 했다. 셋째, 사회조직들이 보다 거시적 수준으로 확장됨에 따른 발현적인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매개가치와 제도화와 같은 추가적인 개념을 설명하였다. 넷째, 조직의 상이한 수준을 나타내는 사회조직의 일반적 유형들인 부류,공동체,조직화된 집합체 및 사회체계들을 분류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사회학적 이론화에 존재하는 미시-거시적 분석의 간격을 메우는 유용한 시발점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문제점들이 남아있다. 터너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다음의 세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블라우가 조직화된 집합체를 너무 광범위하게 정의하여, 소집단으로부터 복합적 조직체에 이르기 까지 모든 현상을 포괄하려고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둘째로는 조직들의 수준차이를 설명하는 추가적인 개념들을 제시한 것은 미시-거시적 간격만을 밝혀주고 있을 뿐 보다 거시적인 수준의 사회조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의미에서 어떠한 개념들이 필요한지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셋째, 블라우가 교환개념들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교환원리로 편입시킨 것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IV 에머슨의 연결망이론

에머슨의 연결망이론은 호만스와 블라우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대안으로 제안되었다. 랜달 콜린스는 에머슨의 연결망이론을 이론영역에서의 상대적으로 새로운 주자로 평가하면서 미시-거시간의 심각한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경험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에머슨의 도식은 우선 호만스의 도식보다 훨씬 더 연역적인 엄밀성을 보여주었다. 에머슨은 사회학적인 이론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으로 조작심리학의 원리들을 사용하면서 호만스의 개인주의적 환원주의를 극복하고 있다.

둘째로 에머슨의 연결망 접근은 권력의 역동성에 대한 블라우와 최근의 호만스의 관심을 보다 확대하고 유지시켰다. 그는 종속,권력의 사용,그리고 균형화 과정이 사회구조 변화의 원천으로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기술하였다.

셋째로 에머슨의 접근은 호만스와 블라우의 사회구조의 개념화들에 있어 모호한 점을 제거하였다.연결망 분석에서는 사회구조가 교환관계의 그물망 안에 있는 행위자들간의 연결 유형들로 보다 명확히 정의되었다.

전반적으로 사회학이론들이 개인들 사이의 과정과 구조와, 집합적 단위들 사이의 과정과 구조를 연속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결망 분석은 단위들간의 관계 형식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러한 불연속성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결망 이론의 장점들은 호만스와 블라우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동어반복의 문제,미시적 단위와 거시적 단위의 불연속성, 그리고 모호성 등을 어느정도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은 교환이론의 미래와 직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V 결론

우리는 이 글의 마지막에서 연결망 이론이 미시와 거시를 통하하려는 교환이론의 노력의 결실로 등장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러나 연결망이론이 더욱더 정교한 방법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이론을 찾기 위한 기술"이라고 일축한다. 하나의 일반이론의 형성을 위한 유력한 대안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완성된 이론적인 정교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이 유의미하더라도 우리가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넣어가야 할 것은 오랫동안 사회학의 일반이론의 구성에 걸림돌이 되어 왔던 미시-거시의 통합문제에 대해서 어떤 다른 이론적 시각보다도 교환이론이 보다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있는 연결망 이론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3.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에 있어서 합리성

I 서론

비판이론은 마르크스주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들 중의 하나이며 동시에 새로운 대안적인 사회이론으로서 우리에게 알려져 왔다. 비판이론과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제시한 비판의 정교화와 이론화는 2세대에 속하는 하버마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회학은 1세대에 속하는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보다는 하버마스에 주목해왔다.

이글은 광범위한 논의를 진척시켜왔던 하버마스의 여러 논의들 중에서 사회이론에 있어서 합리성의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기 이전에 비판이론의 계몽주의와 합리성에 대한 하버마스 이전의 비판이론가들의 시각을 소개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하버마스의 노력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것은 그의 사회이론에 있어서 합리성을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II 계몽주의와 합리성에 대한 비판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 곧 합리성에 대한 비판은 1941년 호르크하이머의 [이성의 종언]에서 최초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파시즘 및 귄위주의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계몽주의 비판으로 전환하는 최초의 표현이기도 했다. 특히 이것은 현대의 파시즘과 같은 권위주의적 지배가 정치적, 경제적 지배의 형태를 띨 뿐만아니라, 그 지배의 뿌리는 오래된 것이며, 인간 이성 자체의 과정에서 나온 이성의 자기 파괴에 기인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배형태요, 이러한 지배형태는 일종의 새로운 야만상태로 인류를 빠뜨린다고 보았다. 이 [이성의 종언]을 보다 구체적으로 체계화한 계몽주의 비판서가 [계몽의 변증법]이요,[도구적 이성 비판]이다. 계몽주의의 비판은 곧 '이성 비판'이며 합리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호르크 하이머는 윈래 이성의 개념은 비판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합리주의는 이성적 기준으로서 엄밀성, 명석성, 판명성의 기준을 확립하였으나 합리성의 의미가 오늘날 변화하여 그 어느때보다도 이성의 실용적 도구화가 만연하게 되었고 지적한다. 이러한 도구화는 이성의 이름으로 강요당하면서 강제성을 띠게 되었고 파시즘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의 자기 파괴를 체계화한 [계몽의 변증법]은 먼저 합리성과 사회적 현실의 연관, 그리고 이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자연과 자연지배의 연관을 다루고 있다. 이때 계몽에 대한 비판은 졔몽 자체가 담고 있는 긍정적인 요인이 맹목적인 지배로 빠져들어가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도구적 이성비판]은 [계몽의 번증법]의 연장선상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있다. 그것은 주체가 자신의 의식을 말살함으로써 사물화하는 기술적 과정이 이성을 단순히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경제기구의 보조수단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이성은 모든 다른 도구를 만드는데 적합한 보편적 도구로 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점에서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성의 도구화,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은 현대사회의 미래에 대한 비관론으로 이끌었다. 이에 따라 사회는 베버가 철로된 새장이라고 불렀던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비관론은 비판이론이 단지 비판의 차원을 넘어서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완성되지 않은 형태로 남아있다. 이러한 작업은 1세대 비판이론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2세대 비판이론가인 하버마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III 계몽주의의 계승과 사회이론에 있어서 합리성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주의의 계승자인 동시에 계몽주의의 게승자였다. 이러한 사실이 그로 하여금 새로운 통합을 가능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는 1세대 비판이론가와는 달리 계몽주의와 합리성에 대한 비판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새로운 통합을 시도함으로써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노동과 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범주틀을 제시함으로써 베버의 합리화의 개념을 새로이 형성하고자 하였으며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을 재구성하였다. 하버마스는 노동과 의사소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먼저 노동은 목적 합리적 행위이다. 이 노동 또는 목적 합리적 행위는 도구적 행위나 합리적 선택을 의미하며 ,또는 양자의 결합을 의미한다. 도구적 행위란 경험적 지식에 의거한 기술적 규칙들에 따라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술적 규칙은 모든 경우에 관찰가능한 물리적 또는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조건적 예측 또는 명령을 의미한다. 이런 한편에서 합리적 선택은 분석적 지식에 의거한 정책에 따라 이루어지며, 정책은 우위 원칙, 즉 가치체계와 보편적 원리로 부터 연역된다. 이 합리적 선택을 하버마스는 정책적 행위라고 부른다. 요컨대 목적 합리적 행위는 도구적 행위와 정책적 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상호작용은 의사소통 행위를 의미한다. 의사소통 행위는 상징적으로 매개된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은 쌍방간에 행동할 것을 전제로 하고 적어도 두 사람의 행위주체가 이해하고 승인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상호작용을 지도하는 사회적 규범은 제재에 의해 뒷받침되며, 규범의 의미는 일상 언어적 의사소통 속에서 객관화된다. 상호작용의 기능은 제도의 유지 또는 쌍방간의 강화에 기초한 규범의 준수요, 상호작용의 습득 메카니즘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소통 합리성은 해방적이고 개인화이며 지배없는 의사소통의 확대를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사소통 행위의 배후에는 이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의사소통적인 행위는 합리적 이성에 의해서 동기화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동과 상호작용의 이원론은 하버마스로 하여금은 계몽주의 뿐만아니라 합리성의 부활도 가능하게 하였다. 하버마스는 1세대 비판이론가들이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노동의 문제,곧 목적 합리적 행위만을 논의함으로써 부분적인 이해와 비판에 머물렀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마르크스는 그의 사회이론을 구성하면서 노동의 과정이라는 한 측면에만 집착하였으며 1세대 비판이론가들은 목적합리적 행위로서의 합리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동과 상호작용의 이원론은 사회이론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을 노동과 상호작용의 관련성속에서 파악하였다. 그는 의사소통적인 행위가 허용되는 공공영역(public space)을 설정하고 이러한 의사소통의 장에는 공통의 의미구조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미를 공유하는 세계가 생활세계이며 생활세계의 유지 자체는 사회의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생활세계의 분화과정에서 효율성의 문제와 예측가능성, 통제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보았고 이에따라 사회체계가 등장하였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사회체계는 생활세계로 부터 분화되어 나온 것으로 이것의 재생산은 생활세계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지만 이제 지나치게 비대해짐으로써 사회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행위이론의 영역에서 목적 합리성이 의사소통적인 합리성을 식민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세계와 사회체계는 사회통합과 체계통합과 관련된다. 사회통합은 말하고 행위하는 주체가 사회화되는 제도체계와 연관된다. 이 경우 사회체계들은 상징적으로 구조화된 생활세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체계통합은 스스로 규제된 체계의 특수한 조정활동과 연관된다. 이 경우 사회 체계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세계의 복잡성을 극복함으로써 사회체계들의 경계와 존속을 유지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이 두가지 패러다임,곧 생활세계와 사회체계는 옳다. 문제는 이 둘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거부하는 과정이며 생활세계의 저항을 필요로 한다. 곧 합리적 이성을 통한 극복이 요구되며 이것은 하버마스가 생활세계의 저항으로서 신사회운동을 제기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인 행위의 발견을 통해서 합리성을 부활시켰으며 이것을 사회이론의 재구성에 적용하였다. 합리성의 부활은 이성에 대한 믿음이며 동시에 계몽주의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1세대 비판이론가와는 달리 비판을 넘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IV 결론

하버마스의 재구성은 1세대 비판이론가들과 차별성을 갖고 있을 뿐만아니라 구조주의와도 차별성을 갖는다. 특히 후기 구조주의의 대표적인 학자인 푸코와의 시각의 차이는 합리성에 대한 문제와 계몽주의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담고 있다. 이는 푸코나 후기 구조주의 논자들이 합리성을 해체하려고 했던데 비해 하버마스가 이를 재구성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의 재구성에 있어서 일관되게 통합적인 시도를 전개했다는 것이며 이를 토대로 합리성을 재발견했다는 점일 것이다.
 
 

4. 기능주의와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견해 비교

I 서론

행위와 구조는 사회학적,철학적 문헌에서 종종 대립적인 용어로 이해되었다. 행위에 관심을 갖는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인과관계나 구조적 설명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비쳐졌으며 구조적인 해석에 관심을 둔 사회학자는 인간행위자와 행위주체에 관한 이론에 무감각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대립의 양 극단에 위치한 사회학적 이론으로 우리 흔히 상징적 상호작용론과 기능주의를 언급한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인간 행위의 '사회적'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자아이론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심을 둔 반면 기능주의는 인간 행위의 준거틀을 통해 사회체계의 '두드러진 속성'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양 이론이 행위와 구조를 통합하고자 했던 노력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슨스는 그의 [사회적 행위의 구조]에서 자원론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하여 행위를 이해하고, 자원론을 사회체계와 화해시킴으로써 새로운 종합을 이루고자 하였다. 미드의 제자인 블루머 역시 기능주의의 제도화과정에 대한 나름의 대안으로써 '연합행동(joint action)'을 제시한 바있다.

이 글은 파슨스와 블루머를 중심으로 양 이론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고 비교하는데 목적을 둔다. 파슨스와 블루머를 논의의 대상으로 국한시킨 것은 이들이 양 이론의 대표주자일 뿐만 아니라 가장 명확하게 사회적 행위에 대한 관점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II 기능주의에 있어 사회적 행위관

파슨스의 행위이론은 [사회적 행위의 구조]에서 자원론적 행위이론으로 소개되면서 구체화됐다. 파슨스의 자원론적 행위이론은 공리주의, 실증주의, 그리고 관념론의 유용한 가정과 개념을 종합화한 것이다.

터너에 의하면 파슨스가 공리주의로 부터 인간의 목표추구 본성과 선택능력을 강조한 것을 받아들였고, 실증주의로 부터는 사회생활의 물질적 매개변수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주었으며, 관념론으로 부터는 관념들이 개인적 과정과 사회적 과정을 구분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는 점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곧 파슨스의 사회적 행위는 주관적인 요소와 객관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자 했다고 볼수 있는데 공리주의와 관념론으로 부터 목표, 노력, 규범 등의 주관적 구성요소를, 실증주의로 부터 조건과 수단이라는 객관적 구성요소를 흡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사회적 행위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행위자들에 의해 행해진 단위행위(unit act)의 연속으로서 사회체계의 구조는 여러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이 얽히고 설킨 단위행위를 기능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기능적인 분석은 사회적 행위가 진공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행위자가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맥락에서 사회적 행위가 일어남을 강조한 것을 의미하며 뒤르켐의 용어를 빌리자면 사회적 행위는 각 행위자의 역할이라는 '집합 표상'에 의해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III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있어 사회적 행위관

블루머의 사회적 행위관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나온 다음과 같은 세가지 가정을 통해서 대표되고 있다. 이 세가지 가정은 첫째, 인간은 사물이 그들에게 갖는 의미에 기반해서 행위한다 둘째, 이러한 의미는 인간사회에 있어서 사회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셋째, 이러한 의미는 각 개인이 접하는 신호를 다루는데 있어서 각 개인에 의해 해석되고 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행위관의 근저에는 미드와 실용주의 철학자들의 자아이론이 존재한다. 미드를 통해 전수된 자아이론은 사회학에서 '개인'을 발견하게 했으며 사회생활을 의도적이고 인식능력이 있는 행위자의 능동적인 성취로 간주하게 했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있어서 사회적 행위는 바로 자아를 가지고 있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행위자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의미하며 이때의 상호작용은 상징적인 매개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IV 두 이론의 사회적 행위관 비교

파슨스가 개인의 인성 속에 문화적 가치와 규범적인 구조 또는 열학 유형이 사회화과정을 통하여 내면화되는 현상에 관심을 가진데 반해 블루머는 인간행위에 있어서 의미해석의 과정, 곧 다른 사람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그를 해석하며 다른 사람과, 자기자신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관심 영역의 차이는 사회적 행위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상이한 규정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그것이 본질적인 차이인가, 아니면 연구 전략상의 차이인가에 대해서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죠나단 터너는 1974년 사회학계간지에서 [상징적 상호작용론자로서의 파스스]라는 글을 통해 양 이론의 입장을 본질적인 차이로 보지 않고 연구 전략상의 차이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파슨스의 자원론적인 행위이론은 행위자가 능동적으로 대상을 검토하고, 해석하며, 평가하는 결정과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사회적 행위관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이들의 차이는 연구전략상의 차이로 파슨스가 상징적 상호작용 과정에서 나오는 발현적 속성에 관심을 갖는데 반해 상호작용론은 상징적 상호작용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블루머는 이러한 견해를 전면으로 거부하고 아주 기본적인 차이가 있을을 지적한다. 이 차이는 첫째, 행위자가 구체적인 상황을 지시하고 평가하는 과정은 '해석'의 가정인데 파슨스의 유형변수는 이미 규정된 상황에 대한 행위자의 '선택'의 과정으로 이해한 점 둘째, 파슨스의 사회적 행위가 단위행위의 짜임인데 반해 자신의 사회적 행위는 짜여지고 있는 행위라는 점에서 다르다는 점 셋째, 인성에 대한 견해로서 자신이 수용한 미드의 해석과 파슨스가 끌어들인 프로이드의 해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해석은 양 이론이 행위와 구조의 종합에 있어서 양 극단에 서있다는 것이다. 이는 파슨스가 뒤르켐으로부터 이어져온 '사회학주의'에 철저하게 맥이 다아있는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많은 부분 미국의 철학인 실용주의에 강한 영향력 하에 있다는 점에서 분명하다.

V 결론

우리는 이 글에서 파슨스와 블루머를 중심으로 기증주의와 상징적 상호작용론간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비교 논술하였다.

이 글은 비교대상으로 파슨스와 블루머를 들었기 때문에 양 이론간의 분명한 차이를 확인하는데는 유효했지만 행위와 구조를 종합하고자 한 양 이론의 전반적인 노력에 대한 이해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이는 이론적인 정교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종합을 시도한 머튼,제프리 알렉산더 등의 기능주의 이론가와 맨포드 쿤, 랄프 터너 등의 상호작용론자를 살펴봄으로써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5. 파슨스와 머튼의 기능주의 이론 비교

I 서론

기능주의 이론의 대표적인 인물 두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나 파슨스와 머튼을 지목할 것이다. 그만큼 두 이론가는 기능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이론가이며 동시에 미국사회학의 거목으로써 항상 기억되고 있다.

이론의 밣전에 있어서 파슨스가 기능주의 이론의 밑그림을 그린 거대이론가라면 머튼은 그 밑그림에 채색을 한 이론가로 기능주의 이론을 보다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수준에서 접근한 이론가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기능주의를 대변하는 이 두 이론가의 이론적인 전략과 분석의 틀을 비교함으로써 기능주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올바른 연구전략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키는데 그 목적을 둔다.

II 파슨스와 머튼의 기능주의 이론 비교

파슨스의 사회학적 이론 구성의 전략은 초기의 저서인 [사회적 행위의 구조]에서 부터 적용한 분석적 실재론(analysis realism)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적 전략은 이론은 무엇보다 먼저 다양하고 혼돈되어 있는 경험적인 싫재로 부터 분석적 공통요소들로 추상화된 개념들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파슨스는 전생애에 걸쳐 이러한 이론 구성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대단히 추상적이고 고도로 분석적이며 전문화된 용어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해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것은 파슨스가 모든 형태의 문화적 상황과 사회구조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형태의 행동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이며 추상적인 종합적 이론체계를 발전시키려고 했다는 점을 의미하는데 이 때문에 파슨스의 연구는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의 여러 측면들을 분류하는 범주들을 제공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예측적 가설을 제공하는 이론이 되지 못했다고 비판받았다.

머튼이 파슨스의 전 이론체계를 거의 수용하고 있으면서도 이론 구성 전략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제기를 한 것은 이러한 비판을 극복하고자 하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의 노력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머튼 그의 주저인 [사회이론과 사회구조](1968)에서 기능적 분석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논하고 있으면서도 기능적 전근자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다음의 세가지 상호연관된 가정들을 비판하였다.

이 세가지 가정들은 첫째, 사회를 기능적으로 단일한 것으로 가정하는 것 둘째, 모든 표준화된 사회적,문화적 유형은 긍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셋째, 문화적인 유형의 기능은 모두 필수불가결하다는 가정 등이다.

이러한 가정에 대해서 머튼은 첫째, 사회가 기능적으로 단일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중요한 경험적인 질문을 생략하는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경험적으로 볼때 한 사회의 통합의 정도는 시기에 따라서 그 정도를 달리 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머튼은 경험적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둘째, 모든 유형이 긍정적인 기능을 갖는다는 가정에 대해서 머튼은 역기능적인 요소를 도입하였으며 잠재적 기능과 현재적 기능을 첨부함으로써 종합적인 이해를 도모하였다. 셋째, 필수불가결성에 대한 것은 '기능적 대안'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흔히 '중범위 이론'으로 불린다. 그의 중범위 이론은 파슨스의 기능주의 패러다임을 더욱더 세분화하고 정교한 형태로 보완한 동시에 파슨스 이론의 한계를 지적한 연구전략상의 상당한 수정을 촉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III 결론

파슨스와 머튼은 이론적인 시각에 있어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양자는 이론 구성전략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연구의 대상, 연구의 범위, 연구 방법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파슨스가 추상적인 분석적인 사회일반에 관심을 갖고 거대이론을 그의 분석적 실재론에 입각하여 연구했던 반면에 머튼은 경험적인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고 중범위이론을 그의 이론적,과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차이는 넓게 보아 이론 구성 전략에 있어서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이론적인 시각 자체의 차이는 아니다. 이로인해 두 이론가는 같은 이론적인 시각하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기능주의 패러다임을 확장시키고자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6. 블루머와 고프만 이론의 차이점과 유사점
 
I 서론

블루머와 고프만은 미국에서 상징적 상호작용론이 정착하는데 기여한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 두 이론가는 상징적 상호작용론내의 다양한 이론적인 경향을 알 수 있게 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많은 차이점 역시 가지고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고프만은 자신이 상징적 상호작용론자가 아님을 주장해 왔다. 블루머와 고프만 이외에 행위의 외적 상황에 주목한 랄프 터너나 구조적인 요소를 강조한 맨포드 쿤 역시 분명한 입장의 차이를 가지고 있어 상징적 상호작용론 진영의 다양성을 짐작케 한다.

이글은 블루머와 고프만의 이론적인 차이점과 유사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며 동시에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대한 이해를 진작시킬 목적으로 쓰여졌다. 여기에서 먼저 차이점을 논한 것은 일반적으로 두 이론가의 유사성만이 부각되어 왔기 때문에 차이점을 먼저 논함으로써 두 이론가를 보다 분명하게 비교하기 위함이다.
 
II 블루머와 고프만의 차이점

블루머와 고프만 양자는 모두 인간의 사회적 행위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이론가이다. 곧 행위자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둔 이들은 이에대한 이론적인 규명에 있어서 판이한 관심영역을 개척하였다.

블루머는 경험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쟁점보다는 일반적인 이론 시각을 정립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적 행위와 사회 질서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원천은 무엇이며 그 과정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었다. 블루머는 미드의 견해를 수용하여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으로써 '자아'를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을 전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의미'를 형성하는 인간의 상호작용 과정을 설명하였다.

반면 고프만은 자아를 가진 존재로써 인간을 전제로 하였지만 의미의 형성과정에 관심을 두지 않고 개인들이 어떤 '규칙'을 사용함으로써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고프만은 이 규칙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며 상호작용이 이루어 지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러한 이론적인 관심 영역의 차이는 자아관에서의 차이와 사회적 질서의 유지에 대한 상이한 견해로 이끌었다. 고프만의 자아관은 인간의 동기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인간 행위는 조작적이라고 보는 점에서 블루머와는 차이를 보인다. 블루머가 미국의 실용주의와 마찬가지로 낙관적인 자유주의에 영향하에 놓여있던 것에 반해서 고프만은 비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제프리 알렉산더는 고프만이 살았던 시기는 낙관적인 자유주의가 쇠퇴하던 50년대 말이었으며 고프만의 행위자는 개체화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소외된 존재였다고 지적한다. 곧 고프만이 직면한 사회는 자유롭고 비교적 만족스러운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한 절망적인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가 사회생활을 전략적이고 마키아벨리적으로 묘사한 것은 바로 이런데서 기인한 것이다.

사회적 질서는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물음에 대해서도 양 이론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블루머는 사회적인 질서는 상호작용이 이미 수립된 의미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 의미에 따라 자신의 행동 방향을 정리하게 된다는 점에서 가능하다고 본 반면 고프만은 사회질서란 강대방의 권리에 대한 쌍방간의 도덕적인 인정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회적 규칙을 인지적인 하나의 '자원'으로써 사용하는데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곧 블루머가 상호작용의 본질을 규정하는 행위자의 본질에 주목한 반면 고프만은 행위자의 본질과 특성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호작용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규칙에 관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7. 고프만과 가핑켈의 이론의 유사점과 차이점

파슨스를 중심으로 한 기존사회학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등
장한 상징적 상호작용론과 민생방법론은 역할이나 사회구조보다는 개인에 관심을 갖는 대표적인 사회심리학적 접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사한 이론적인 관심과 방법론적인 규칙을 갖고 있는 이 두이론은 기능주의의 대안적인 조망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사회학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 만큼이나 커다란 차이점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두이론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분명히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여기에서는 특히 유사한 이론적인 조망을 하고 있는 고프만과 가핑켈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고프만과 가핑켈은 특히 두이론 영역에서 가장 유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교는 필수적이라고 여겨진다.

I 고프만과 가핑켈의 유사점

고프만은 미국 실용주의의 영향을 받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연장선상하에 있다고 통상 알려져 왔다. 반면 가핑켈은 고프만과는 달리 유럽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민생방법론의 태두로써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프만이 의식적 반성의 대상이며 또한 자발적 활동의 원천으로 보는 자아에 대한 미드의 사상과 상황을 규정한다는 슈츠의 개념을 결합시킴으로써 현상학적 조망과의 차별성을 불분명하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상징적 상호작용론과 민생방법론과의 차이는 상호작용론이 자아를 가지고 있는 행위자가 상황의 의미를 자동적으로 알게되는 것으로 전제한데 비해서 민생방법론은 그런 상황의 의미를 문제시하며 행위자로 하여금 상황을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프만은 가핑켈과 마찬가지로 행위자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행위자들의 규칙 또는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이론적인 구성전략을 갖고 있다.

또한 양자는 대면적인 세계,동시에 일상적인 생활세계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연구초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가핑켈과 고프만에게 있어서 실재란 사회적 사실로서 사물적 존재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성취물로써 참여자의 상호주관적 체험을 통해서 발견되어지는 사회생활의 실재성이다.

이런 점에서 양자는 파슨스의 기능주의에 대한 공통적인 비판의식을 갖는다. 파슨스처럼 사회적 존재가 하나의 구조로써 인간에 외재한채 인간을 규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상호작용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사회적 사실이 견고한 실재가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확정적인 실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가핑켈은 이러한 불안정적이고 불확실한 특징을 위반실험을 통해 확인하고 협의된 행위의 본질을 탐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연구방법에서도 유사성을 갖는다. 실증적인 방법을 거부한 이들은 참여관찰, 심층 면접 등의 질적인 방법을 선호하였다. 다만 가핑켈의 경우 참여관찰시에 참여자로서의 위치보다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더욱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양 이론가가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사회구성원(Member)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피터 버거는 고프만이 1차 사회화(자아의 형성과정,어린이의 어른으로의 성장과정)를 다루지 않고 2차 사회화(어른들의 사회화)만은 다룸으로써 반쪽의 이론이 되었다고 비판한바 있듯이 그는 사회성원으로써 참여할 수 있는 제반여건을 갖춘 구성원들만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가핑켈 역시 민생방법론이 구성원(Member)의 방법임을 못박고 구성원이라는 개념을 "상식을 가지며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어린아이나 정신병자 등은 제외된다"고 밝히고 있다.
 
II 고프만과 가핑켈의 차이점

고프만과 가핑켈이 실재의 구성에 있어서 규칙 또는 방법에 흥미를 가졌다는 이론구성 전략상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전자가 미드의 자아이론에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민속방법론자들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을 넘어서서,모든 사회적 결속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일련의 공통적 신념 및 가치들의 존재를 부인한다. 이것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이 구조나 문화적 규범을 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복수의 행위자들의 상호작용과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제로서 자아에 관심을 가졌던 것과는 달리 민생방법론은 행위자 개인의 주관적 체험의 세계에서의 실재의 구성 과정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곧 민생방법론이 휠씬 더 명목론적이며 개인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생방법론이 우리의 체험밖의 세계의 실제성에 대해서 우리의 믿음을 배제하거나 또는 괄호속에 두어야 한다고 본 반면 고프만을 비롯한 상징적 상호작용론자들은 사회와 개인간에, 구조와 행위간에 통합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슈츠를 비롯한 현상학적 조망의 기본전제란 엄밀히 말해 사실이라는 것은 없고 모든 사실은 우리의 정신활동에 의해 선택되고 해석되는 것으로 보는 것으로 극단적인 명목론의 특징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것은 가핑켈에게 있어서 사회와 개인간의, 개인과 개인간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자아를 가지고 서로간의 의미를 해석하는 유기체로서 개인을 보지않는 것으로 이끈다. 이러한 전제는 가핑켈에게는 없다. 가핑켈은 사회적 상호작용론이 내용에 대해서만 설명하는데 반해서 어떤 상황에서 설명과 의미는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의 본질에 크게 의존적이라는 지표적인 관련성을 핵심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III 결론

개인에 관심을 가진 이론적 조망으로서 상징적 상호작용론과 민생방법론은 사회심리학적 접근이라는 공통점이외에 일상생활에서의 사회적 행위와 질서의 본질을 파헤치려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반면, 민생방법론이 휠씬 더 주관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 상호작용론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파킨슨은 현재 민생방법론이 '행위'로 부터 '활동'으로, '질서'로 부터 '순서'로 관심여역이 바뀌면서 초기의 의도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절차, 규칙, 순서를 강조하고 내용, 의미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민생방법론의 기본적인 의도와는 다른 것으로 기존 사회학의 틀안에 안주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 이론이 대안적인 패러다임으로서 현재까지도 주목받고 있단ㄴ 점이며 사회이론에서 '개인'을 되찾는 작업에 최선두에 서있다는 점일 것이다.